뉴질랜드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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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부연구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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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70-3252
수정일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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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1984년 연구원에 입사해 환경조사과, 수질보존과, 폐기물과에서 근무하고 1996년 퇴직한 김용국입니다.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사업을 하면서 한인교회에 장로로서 선교를 사명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먼저, 뉴질랜드에 대해 소개해 드리면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어 65세 이상 연금 지급, 학생 수당 지급, 공립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는 모두 무료입니다. 또한 시내를 관통하는 강물도 1급수로 숭어가 뛰어 놀만큼 깨끗한 자연 환경을 보전하고 있어 환경 전문가들은 꼭 방문하시길 추천합니다. 이민 1세대는 언어 문제로 전문 직업을 찾기 힘들지만 자녀들은 졸업 후 취업이 어렵지 않습니다. 저희 딸 부부는 의사와 공인회계사, 아들 부부는 건축사와 변호사로 각자 주류 사회에 진입하여 일원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평탄치는 않았습니다. 1990년대에 이민 열풍이 불었을 당시,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유학과 외국에서의 생활을 실현하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자연이 잘보존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민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도착 후 환경오염 분야 전문기관에 취직을 시도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전문 영어 부족과 뉴질랜드에서의 학문적 배경이 부족하여 탈락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뉴질랜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Canterbury 대학 논문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2년 정도 공부를 할 즈음,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학생 수당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떡 공장에서 일하던 아내는 심한 피로로 우울증까지 겪게 되었고 자녀들도 사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학업을 중단하고 2001년부터 Dairy Shop(일종의 편의점)과 수출 및 온라인 건강식품회사를 시작했습니다. 한참 사업이 성장 하고 있을 때 두 번째 고비가 찾아 왔습니다. 사업 오픈 2년 후 아내가 근무 중에 권총강도를 당했고, 그 충격으로 ‘왜 이민을 와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험한 꼴을 당하게 하는가?’ 하는 죄의식에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려운 시점을 매일 새벽 가족과 나라,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극복했고 깊은 신앙을 갖게 되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연구원 생활은 제 인생에서 매우 값지고 행복한 생활이었습니다. 좋은 동료들과의 만남은 저의 삶에 자긍심을 갖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연구사 시보 시절 한국에 처음으로 도입된 에이즈시험 검사 때 두려움 때문에 조한빈 선생과 같이 매일 손을 수십 번씩 씻었던 기억, 88올림픽 수영장 관리를 위해서 선배님들 도우미를 했던 일, 한강 오염도 조사를 위해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샘플을 채취했던 일, 폐기물과에서 생분뇨를 검사했던 일들 모두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동료들과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아름다운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연구원을 이렇게 훌륭하게 발전 시켜준 선후배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운 연구원 선후배 여러분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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