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명예퇴직 후 미국 이민, 시카고에서 세탁공장을 운영하는 이해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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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환경연구원 식품의약품부
문의
02-570-3252
수정일
2018-02-28

4-0.보건환경톡톡이-만난사람 4-11.연구원-명예퇴직-후-미국-이민,-시카고에서-세탁공장을-운영하는-이해식님 4-12.편집자주 4-13.딸의-결혼식-날-가족과-찍은-사진,-왼쪽-첫-번째가-이해식님    연구원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에게는 격려의 의미로 장기재직 휴가가 주어진다. 17년 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난 미국 여행이 발단이었다. 10일간의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지 9일 만에 20년간 일했던 짧지 않은 연구원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2000년 12월말, 연구원을 명예 퇴직한 이해식님은 2005년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고, 현재 시카고에서 세탁 공장을 운영하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작년 4월에는 딸을 시집보내고 김치와 무국을 좋아하는 미국인 사위도 얻었다.

   연구원 생활이 전부였던 그에게 미국은 그야말로 ‘꿈의 나라’였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민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그간의 미국 생활을 돌아보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미국에서 살 생각을 안 했을 겁니다.”라며 “몰랐기 때문에…… 살기 위해 애쓰다 보니 오늘이 왔다”고 말했다.

   보건환경연구원이 한남동에서 양재동으로 이사 했을 때, 고가의 장비를 지키기 위해 연구원에서 밤을 새느라, 첫 딸이 태어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한 가족처럼 함께 했던 연구원 동료들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연구원 주변에 관심이 많았다. 한 때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호텔 주방에서 한 달간 실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까지 혹독한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1년짜리 관광 비자가 끝나고 유학 비자 받은 후부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낮에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어학원을 다니는 고된 생활이 시작됐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던 세탁 공장과 시카고 중심가에 있는 학교까지 하루 3시간 이상을 길에서 보내며 ‘눈물 젖은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 유일한 위로가 됐던 한국 가요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으며 2년 6개월을 보냈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 아내와 함께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우연히 찾은 한인교회에서 지금의 세탁 공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일을 가르쳐 주고, 미국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을 만났다.

   연구원에 근무 할 때도 남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성실하게 일하며 솔선수범 했던 그였지만, 멕시칸 노동자들과 함께 세탁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이런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며 “손재주는 없었지만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좋게 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꿈을 버리고 않고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성공적인 이민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면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앞으로의 희망을 밝혔다.

   이해식님은 해외 이민을 계획하는 후배에게 “사전에 준비를 하고 온 사람과 아닌 사람은 현실적인 삶의 질이 달라진다”며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일하며 단전호흡 동아리도 같이 했었던 분들이 보고 싶다”며 “미국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시카고에 들러 달라”고 말했다.

 

- 식품의약품부 연구기획팀 조영리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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