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맞이할 자기 결정권 보장 위해 봉사하는 유병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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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환경연구원 식품의약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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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05-24

5-0.보건환경톡톡이-만난사람 5-11.‘존엄한-죽음’-맞이할-자기-결정권-보장-위해-봉사하는-유병태-교수 5-12.편집자주 5-13.3대가-함께-사는-집-앞에서-자서전을-들고 5-14.5월-17일,-부천-한라종합복지관에서-웰다잉-강의-중인-유병태-교수

   ‘Well-dying(웰 다잉)’,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살아온 날들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2002년의 마지막 날, 연구원을 정년 퇴임한 유병태 교수는 고려대 보건과학대학과 먹는물검사기관 등 현업에서 11년간 근무하다 2015년부터 ‘Well-dying’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건강하게 잘 산다는 의미의 ‘Well-being’은 익히 알지만, 잘 죽는 다는 ‘Well-dying’은 무슨 의미 일까? 유 교수는 “익숙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존엄한 모습으로 고통 없이 죽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잘 죽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유언장 작성, 화장을 할 것인지 매장을 할 것인지, 매장을 한다면 어디에 할 것인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가 판단한 죽음의 마지막 순간인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할 것인지 등이 있을 수 있다.

   유 교수는 작년에만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경로당 80곳을 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 보장을 위해 ‘Well-dying’ 강의와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안내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기에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여부에 대해 자발적으로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등록기관에 제출하면 임종기에 어느 병원에서나 열람하여 정한 뜻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유병태 교수는 2013년 우연히 신문에서 ‘Well-dying’에 대한 내용을 본 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죽음 준비 과정 교육을 이수했다. 그 해 5월 갑작스럽게 둘째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게 되면서,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 없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연명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6년도부터는 관련법이 제정되어 죽음의 책임이 개인과 가족을 넘어 국가와 사회가 함께 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Well-dying’ 전문 강사 활동도 더욱 공고한 명분을 가지고 할 수 있게 됐다.

   막연히 죽음을 준비한다고 하면 침울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유 교수는 오히려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만약 당장 죽는다면, 이웃과 싸우기보다 화해하려고 할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기보다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럽게 둘째 딸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녀들의 제안으로 3년 전부터 아들과 딸 식구까지 모두 11명이 4층짜리 집에 함께 모여 살고 있다. 그야말로 ‘북적북적’, 매일 자녀와 손주를 보아 좋고, 자녀들은 부모의 안위를 확인 할 수 있어 안심이다.

   2012년도에 고희를 맞아 자서전 「돌아보니 모두 다 은총이었네」를 발간했고, 2016년에는 먼저 간 딸을 기억하기 위해 아버지인 그가 딸의 일대기를 손수 정리한 「꽃은 떨어져도 열매는 남는다」를 책으로 엮었다. 2015년도부터는 성당에서 노인합창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평균 연령 83세인 스물다섯 명의 남성 노인 성가대는 수요일과 목요일 미사 그리고 장례 미사를 주관하고 있다. 또 부천의 소사성당과 중3동 성당의 사목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퇴직한지 벌써 16년, 중구보건소에서 보건 교육을 담당했던 5년을 제외하고는 28년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근무했다. 연구원은 그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친 곳이다. 1987년 조사지도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에이즈 검사 장비를 미국에서 도입하여 검사 체계를 수립했고, 1998년 대기보전과장 시절에는 독일 검사 기관에서 실시하던 대형 폐기물 소각장의 다이옥신 성분 시료 채취를 국내에서도 할 수 있도록 장비회사와 공동으로 고안하여 전국적으로 실용화시켰다. 1948년부터 50여 년간의 보건환경연구원 발전 과정을 글로 정리해 2001년 원보에 싣기도 했다.

   그는 연구원에서의 생활에 대해 “되돌아보면 참으로 은총의 시간이었다”며 “당시 신입 직원들의 직무 교육을 담당했었는데, 그들이 지금은 연구원의 팀장, 부장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또한, 서울시 공무원 교육원 외래 강사로 1992년부터 10년간 보건·연구·간호·환경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환경위생학 강의를 했다.

   그러고 보면 평생 남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에게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으니 “10년째 집 근처 헬스장에서 근력과 유산소 운동을 하며 꾸준히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77세인 그는 “앞으로도 말하고, 글 쓰고, 남을 가르치는 재주를 가지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진솔하게 살아가려고 한다”며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 식품의약품부 연구기획팀 조영리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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